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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채식주의자는 뜻밖이었다. 소설이 시작하는 처음부터 강렬하게 내치고 강렬하게 달려 끝을 맺었다. 대한민국을 강타했던 "2016 맨부커상"을 수상한 이유로 베스트셀러가 되었는지 알 수 없다. 훌륭한 작품으로 재탄생 했다기 보다는 그냥 작품이 통렬하고 강하다. 최근 읽은 책 중 2일만에 읽은 책이 없었는데 그만큼 흡입력이 좋다.

 

잠깐! 영혜의 삶이건 영예의 남편의 삶이건 주인공의 언니와 언니의 남편까지 삶은 우리를 즐거운 시간에만 묶어두질 않는다. 삶이 뒤숭숭 하다. 인생을 바라보는 시간과 관점이 달라 팍팍하고 허 하다. 갈등, 고민, 연민, 사랑, 강박관념 등 쉴새 없이 머리를 흔들게 만든다. 그렇게 살아오면서, 그래서 무엇인가를 찾았다고 해야 할까?



채식주의자로 낙인이 찍혀진 것은 그녀가 고기를 소화시키지 못하는데 기인한다. 하지만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채식주의자가 되었다거나 채식주의자로 바라보는 관점이 옳다고 그 누가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인간은 자신의 육체 에너지와 성장, 유지를 위해 음식물을 섭취한다. 인간은 본래 잡식성 동물이다. 야만국가로 불리우는 곳에서는 인간이 인간을 섭취하는 일도 있다. 그 섭취의 과정에서 육식주의자, 채식주의자를 구분하긴 어렵다. 



채식주의자를 만든 것은 사회가 만든 부산물이 분명하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과 그 사람이 어떤 음식물을 취식하느냐에 따라 구분하는게 모호하다는 것이다. 인간의 진화로 호모 사피엔스가 된 이후부터였을까? 인간의 지식수준이 높아지고, 지능이 발달하고 다른 사람들의 인생, 삶에 관여하는 폭이 넓어졌다. 법을 어기지 않더라도 바라보는 관점에서 비난과 비판 수준이 높아졌다. 타인의 삶과 방식에 방관하는 자세도 옳다고 할 수는 없지만 지나친 간섭과 방해는 독이 된다. 



영혜의 고지식한 아버지는 강압적인 행동으로 영혜를 무기력하게 만든다.(물론 그 전에 가족의 언어폭력이 앞섰지만) 영혜는 극단의 선택을 하게 되고, 가족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육식을 즐겼던 그녀가 왜 삶의 방식을 바꿨는지? 왜 힘든지에 대한 진지한 대화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는 사회 분위기와도 일맥 상통한다. 언어 폭력이 난무하고, 주관적 입장에서 무차별 폭행을 가한다. 폭력이 폭력을 낳고 피해자는 무기력함을 느끼고 피로를 느낀다. 결국엔 그 폭력이 정당화 될 수 없고, 정당화 되려는 자정작용도 장치로 사용되기 어렵다. 


소설의 한 대목을 유심히 살펴보면 영혜의 아픔과 고통이 단지 꿈 때문만은 아니다. 형부와의 대화, 행동을 통해 변화의 기미가 보인다. 결국 둘은 정신병원에 가서 정신적인 치료를 받게 되지만 그 원인을 제대로 제거하거나 하는 일들은 사회통념상 받아 들여지지 않는다.


바로 이것이 사회가 만든 부산물로의 채식주의자이자 이타적인 모습을 보인 사람에게 가해지는 폭력이다. 소설은 이런 맹점을 날카롭게 이야기한다. 다수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이 전혀 거리낌이 없다. 독재적인 모습을 보이는 권력자들에게 가하는 일침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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